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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여행(7)] 살트(SALT)(1) - 살트로 가는 길, 그리고 터키군 묘지 (2013.11.2.)동부역사(외국여행)/13~14년 요르단 2017. 11. 7. 16:00
안녕하세요! 경춘선통일호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포스팅을 해보네요! 간단한 인사가 아닌 이런 포스팅은 거의 1년만인 것 같아요! 앞으로 당분간은이미 9월 29일에 올린 바로 전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듯이 자주 포스팅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가끔은 시간을 내서 포스팅을 해보려고요! 집을 너무 오래 비워 놓으면 안되잖아요.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요르단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인 '살트(Salt/السلط)'입니다. 2013년 11월 2일에 다녀왔어요. 거의 정확히 4년 전이네요. (벌써 시간이...) 근데 우잉? 분명 2014년 3월에 올린 '페트라' 포스팅에서 '이로써 요르단 여행기를 마칩니다~!!!' 이래 놓고서는 이제 와서 뭔 또 요르단?? 네... 사실 그때는 더 이상 올릴 요르단 여행지는 없는 줄 알았는데, 언젠가 사진을 올려놓은클라우드를 뒤적뒤적 거리다보니 제가 11월 2일에 학교 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살트를 다녀왔더라고요. 완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아마 제가 준비한 여행도 아니고 그냥 주말에 심심해서 같이 요르단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친구랑 학교 버스 타고 그냥 단체로 다녀온 거라 다른 여행에 비해 기억에 크게 안 남았었나봐요. 사실 지금도 제가 간 곳이 정확히 뭔지 잘 몰라서 막 찾아보고 난리를...ㅠ.ㅜ 기억해 보면 사실 여행 가던 날 아침에 학교 버스를 타고서도 '오늘 우리가 가는 데가 어디라고??' 이랬던 기억이 나요.ㅋㅋㅋ 살트도 나름 유명한 여행지라는데 그때는 왜 몰랐는지...
어쨌든 살트는 암만 북서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도시이고요, 요르단 전체 지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해 보시면 아래와 같습니다.
암만과 가까운 편이라 거의 둘이 붙어 있네요, 그럼 저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 보면,
이렇습니다. 거의 요르단 수도 암만의 위성도시나 다름이 없는 모습이죠? 실제로도 암만에서 차로 30~40분 정도면 살트에 도착합니다.
살트는 로마자로 표기하면 'Salt'가 되기 때문에 무슨 소금의 도시 같은 느낌도 들지만 소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고요.ㅋㅋㅋ 발음도 영어의 salt와는 전혀다릅니다. 굳이 한글로 표기하자면 [쌀!ㄸ] 비슷한 발음인데요, Salt의 't(ط)'는 한국어나 영어 등의 언어에는 없는 매우 특이한 발음이랍니다. 혀 끝을 ㅌ 발음 할 때처럼 윗니에 갖다 대는 것이 아니라 좀 말아서 입천장의 윗니와 좀 떨어진 부분에 대고 내는 [T] 소리이거든요. 그래서 ㅌ이나 t 발음보다는 훨씬 더 무거운 느낌의 소리가 나요. 그래서 이 자음에 모음 a, i, u를 붙이면 마치 '똬', '띄', '뚜'라고 발음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물론 이 발음들하고도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요. (인터넷에서 검색하다보니 스페인에도 카탈루냐 지방에 'Salt'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네요.ㅋㅋ)
살트는 지도에서도 보실 수 있듯이 요르단 강 동안(현재의 요르단)과 요르단 강 서안(현재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일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정말 번성한 상업도시였다고 해요. 살트라는 도시가 처음으로 형성된 것은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에 마케도니아군이 이 지역에 도시를 만들면서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 이곳은 로마,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등을 거치면서 몇 번씩 붕괴되고 다시 번성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몽골 제국이 한창 서쪽으로 세력을 넓히던 시기에는 몽골군의 침략을 받아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었다고도 해요. 그 이후 이집트에서 뻗어나온 맘루크 왕조가 이 지역까지 통치를 하게 되면서 도시는 재건이 되었고, 오스만 제국 시절 나름대로 상업, 농업도시로 번성을 하다가, 1830년대 초반에 이집트에서는 매우 존경받는 인물인 이브라힘 파샤의 군대가 오스만 제국을 치러 가는 길에 이집트군에 의해 또 한 번 크게 파괴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치 특성상 또 금방 상업도시로 발전을 했고요, 특히 19세기 후반부터는 도시의 전성기라고 불릴만큼 도시가 급격히 발전했고, 현재 살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화려한 유럽식 건물들 역시 이 당시에 지어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21년에 이 지역을 통치하게 된 트란스요르단 왕국(現 요르단)이 가장 번성하고 큰 도시였던 살트 대신 그보다 작은 도시였던 암만을 수도로 선택하면서, 살트는 급격히 쇠퇴기를 맞게 됩니다. 현재 살트 인구는 9만명 정도이고, 암만 인구는 4백만 명 정도이니,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 도시의 차이가 커졌죠. 물론 살트는 여전히 지역 주요 도시이기는 해서 현재 암만 북서부에 위치한 '발카 주'의 주도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구 9만명 정도의 도시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작은 도시이지만, 요르단에서는 인구가 4백만인 수도 암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요 도시들이 한국 기준으로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에요. 그나마 북부 중심지 이르비드 인구가 50만 명 정도이고, 요르단 최남단 경제자유구역인 아카바(헐! 그러고 보니 아카바도 잠깐 들렀었는데, 아카바도 블로그에 안 올렸네요.ㅋㅋㅋㅋ 언젠가 올려야겠네요!)가 18만 여명, 그리고 나머지 도시들은 10만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9만 정도면 충분히 지역 중심도시일 만한 인구규모인 것이죠.
도시명인 'السلط[as-salT]'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당하던 시절 'saltus'라는 라틴어 도시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saltus'는 라틴어로 '협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살트 자체가 실제로 주변의 여러 (물이 흐르는) 협곡들과 언덕들에 자리잡은 도시입니다. 그래서 암만을 비롯한 요르단 북부의 살기 괜찮은 기후의 도시들(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도시 내부의 길들이 거의 모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입니다. 사실 큰 도시가 들어서기에 적당한 지역은 아니죠. 그런데 살트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 협곡들 덕분입니다. 살트는 '와디 슈아이브(وادي شعيب)'라는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데요, 이 계곡을 중심으로 녹지가 잘 형성되어 있어 요르단 내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이라고 알려져 있거든요. 그래서 살트는 중요한 교통로상에 위치해 있다는 상업적 이점뿐만 아니라 비옥한 토지로인해 농사 또한 잘 되어 농업도 발달한 도시였던 것이죠.
그럼 살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마친 것 같고요,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0^
그런데 살트에 가는 길에 타고 가던 학교 버스가 암만 주와 발카주 딱 경계지점 쯤에서 다른 길로 빠지더니 저희를 내려주더라고요. 근데 사실 여기가 뭐하는 곳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요.ㅠ.ㅜ 그때도 뭔지 알고 구경했던 것 같지는 않고요. 버스 기사 아저씨랑 같이 간 학교 직원분이 뭐라고 맨 앞에서 아랍어랑 영어를 섞어서 얘기를 해주셨는데 잘 안 들려서 그냥 포기하고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여기가 대충 요르단 왕실 관련된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약간 별장이나 저택 느낌도 나고... 근데 정말 뭔지 모르겠어요. 구글링도 열심히 해보고 애플 지도 구글 지도 다 뒤적거려봐도 위치는 알겠는데 어떤 공간인지 설명이.ㅠ.ㅜ 구글 지도에서는 엉뚱하게 'M7moud center salt'라는 아웃렛몰 주소로 검색하면 자료 사진으로 아래 제가 다녀온 곳의 사진들이 나오는데, 여기가 분명 쇼핑몰은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차를 세워놓고 길을 좀 따라 걸어들어가니 고급스럽게 생긴 아랍식 건물들이 보였습니다.
오래되어 보였지만 뭔가 고급스러워보였던 차...
사실 여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전망이었어요. 여기서 암만 교외 지역이 내려다 보였는데,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산과 언덕들이 정말 멋졌답니다^0^ 그래서 그런지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주택들도 많았고, 식당이나 카페들도 근처에 많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건물 내부도 구경을 했는데 사진을 안 찍었는지 사진이 안 보이네요... 일반 집처럼 되어 있었는데, 부엌, 응접실, 침실 등이 무척 잘 갖추어져 있었어요. 가구들도 모두 고급스러워 보였고요. 뭔가 하나하나 풍경이나 내부 모습은 기억이 나는데, 도대체 여기가 뭐 하는 곳이었는지 생각이 안 나니 너무 안타깝네요. 요르단 관광 안내 책자나 관광 안내 웹사이트에 들어가도 이곳에 대한 정보는 없고요.
어쨌든 나름 야외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원도 잘 갖추어져 있어서 신기한 식물들도 많았고요.
집 안에 누군가의 묘로 보이는 시설물도 있었습니다.
으아아 모르겠어요.ㅠ.ㅜ 역대급으로 무책임한 포스팅... 어쨌든 그냥 풍경이 참 멋있었다는 것... 저 언덕 위에 있는 집들은 다 고급 빌라예요. 여기가 어딘지 찾다가 엉뚱하게 근처 부동산 시세랑 근처 신축 빌라 이름들만 잔뜩 찾아봤네요.ㅋㅋㅋ
위성사진으로는 딱 이 위치거든요?? 사진 가운데 부분에 수영장도 작게 보이시죠?? 어딘지 아시는 분 제발 알려주세요.ㅠ.ㅜ 너무 궁금해요!
من فضلك قل لي أين الأماكن التي تظهر في الصور أعلاه
어쨌든, 그렇게 알 수 없는 곳을 구경한 후 버스는 다시 살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트 시내에 진입했습니다.
역시 언덕과 계곡을 끼고 자리한 도시다운 풍경이네요.^^ 근데 도로가 아무리 따로 있어도 저 언덕 위에 살면 많이 불편할 것 같아요. 도심 지역은 또 낮은 곳에 있던데 걸어서 왔다갔다 하려면 너무 힘들 듯...
살트에서 첫번째로 들른 곳은 바로 살트 시내에 있는 터키군 묘지! 정확히 말하면 당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군대였겠죠,
이 지역을 비롯한 많은 아랍 지역은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요, 오스만 제국은 기본적으로 튀르크인들이 세운 국가였고, 아랍 민족들과는 언어와 생활 양식이 많이 달랐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한 아랍 민족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고, 아랍인들은 세계대전 중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반란을 계획하게 됩니다. 마침 영국군 장교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가 아랍 민족들을 도와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돕기 위해 영국군의 지원을 이끌어 내고 2년이 넘는 전쟁 끝에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승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로렌스 및 아랍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영국과 프랑스의 영토 분할 분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오스만 제국이 쫓겨난 아랍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나뉘어 위임통치를 받게 됩니다. 이때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아무렇게나 나뉜 지역 경계는 현재까지도 중동 정세를 불안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큰 원인 중 하나이죠.
요르단은 당시 아랍 반란 중 여러 전투가 발생한 주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예전에 제가 소개해 드렸던 요르단 남부의 붉은 모래 사막인 '와디 럼' 역시 아카바에 있던 터키군 요새를 파괴하러 가던중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이끈 아랍-영국 연합군이 지난 사막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이 와디 럼 사막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일생을 소재로 한 영화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도 등장합니다.
이곳 살트도 만큼 주요 격전지 중에 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1918년 살트에서 있었던 터키군과 영국군의 전투에서는 300명이 넘는 터키군이 전사해 이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뒤로 수십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곳은 1973년이 되어서야 처음 발견되어 공개되고 정식 묘지 겸 추모 공간으로 조성되었고요, 그 후 2009년에는 압둘라 귈 당시 터키 대통령이 요르단을 방문했을 때는 바로 옆에 관련 유물들과 자료들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열렸습니다.
사실 그 당시 아랍 민족들을 이끌었던 사람들 중 파이살 왕자와 압둘라 1세 모두 현재 요르단 왕실 가문인 '하심 가문' 출신이고, 심지어 압둘라 1세는 트란스 요르단 및 요르단 왕국의 초대 국왕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파이살 왕자는 이라크 국왕이 됨), 당시에는 반란군이자 적군이었던 가문이 통치하는 국가에 묘지와 추모 시설이 세워진 것이 되는군요.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래 전 일이고 사실 오늘날 터키 정부와 요르단 정부가 이제 와서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따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될 것 같기는 해요. 그저 복잡한 세상에서 전쟁에 동원되어 비명횡사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겠죠. 또 무엇보다도 여기 묻힌 터키군들은 (비록 당시 아랍과 동맹이기는 했지만) 영국군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니까요.
묘지 한 켠의 커다란 추모벽에는 당시 전사한 인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전사한 터키 군인들이 묻혔던 장소에 세워진 작은 박물관입니다.
1973년 첫 발굴 당시에 찍은 사진인가봐요. 이렇게 전쟁 중에 사망해서,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 땅에 이렇게 수 십 년 동안 잊혀진 채 아무렇게나 묻혀 있었으니...
바로 옆에 있던 모스크입니다.
그나저나 이곳에서도 살트 시가지가 잘 내려다 보였어요. 정말 도시가 언덕과 골짜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네요. 물론 사실 암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터키군 묘지 관람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는데,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신기한 지 동네 아이들이 나타나 저희들을 열심히 구경하며 손도 흔들어 보고 'Hello'도 외쳐보고 그러고 있더라고요.ㅋㅋ
To Be Continued...
2017. 11. 7. 경춘선통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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