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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역이지만 괜찮아 - 경전선 명봉역 (2016.3.2.)본역사(한국철도)/①층 - 역(驛) 2016. 3. 15. 17:30
안녕하세요, 경춘선통일호입니다.^^ 오늘은 지난 3월 2일에 다녀온 전라남도 보성의 명봉역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3월 2일, 명봉역으로 가기 위해 새벽 5시 55분 순천역에서 출발하는 광주송정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 구간(서부경전선)이 원래 승객이 많지 않은데다가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제가 탄 객실에는 순천역을 출발할 때까지 저 말고 다른 손님이 타지 않았어요. 물론 다른 객실에는 손님이 있었겠지만요. 전날 밤새도록 기차를 타고 달려와 잠을 제대로 못 잔 바람에 너무 피곤했던 저는 순천역을 출발하자마자 잠에 빠졌습니다.
혹시나 못 내릴까봐 걱정이 되어 휴대폰 진동 알람 어플리케이션으로 알람을 맞춰놓아서 명봉역에 도착하기 전에 잠에서 깼습니다. 5시 55분에 순천역을 출발한 무궁화호가 명봉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 정각. 워낙 시골이고 주변에 역세권도 딱히 발달되어 있지 않아 저 말고 내리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저씨 한 분이 같이 내리시더라고요. 그렇게 명봉역에 내린 사람은 저와 그 아저씨 단 두 사람.
아직은 겨울 느낌이 여전히 살아 있는 3월이라, 해도 채 제대로 뜨지 못한 이른 아침에 저를 인적 드문 간이역에 내려놓고 떠나는 무궁화호 열차.
뭔가 분명히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막막하더라고요. 7시 54분에 다시 돌아가는 기차를 탈 거라 1시간도 안 머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5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막상 주변에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막막해졌었어요. 근데 그러면서도 이런 기분이나 주변 분위기를 괜히 즐기고 있기도 했고요. 만날 사람 바글바글한 도서관, 카페 이런 곳만 왔다갔다하다가 이런 곳에, 그것도 아주 쌀쌀한 날 이른 아침에 있으니 괜히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들떠 있었어요.
일단은 역 앞으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역 이름 제정 유래를 설명한 안내판 같은데 글씨가 다 날아가서(?) 전혀 보이지를 않더라고요.ㅠ.ㅜ
명봉역은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에 있는 경전선의 역입니다. 1930년 크리스마스에 경전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무궁화호가 하루에 단 5번 정차하는 작은 간이역이고, 또 여객 수요도 많지 않아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는 역원무배치간이역, 쉽게 말하면 '무인역'입니다. 그런데 분명 무인역으로 알고 갔는데 어떤분께서 열심히 역 주변에서 빗자루질을 하시며 열심히 청소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좀 의아했지만 일단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역 앞에는 이런 2차선 도로가 있었고요, 도로 건너에는 이런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집 몇 채가 있었습니다. 정말 작은 마을인 것 같았어요. 이런 집들이 몇 채 더 있었고 나머지는 다 논밭이나 산이었거든요. 정말 수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차가 하루에 5번씩 멈추는 것은 이 지역이 철도가 아니면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해서라고 합니다. 농어촌버스는 하루에 세 번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어쨌든 집이 몇 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이 없었어요. 아! 딱 한 분 계셨어요. 어떤 아저씨께서 나오시더니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시더라고요.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저를 멀리서 한참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시기도 했고요. (좀 민망...)
명봉역은 사실 철도 이용객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은근히 역 자체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많다고 해요. 일단 명봉역사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철도공사 지정 철도문화재로 지정되어있기도 하고요, 또 가을동화, 겨울연가, 봄의 왈츠와 함께 KBS 드라마 계절 시리즈의 하나였던 드라마 '여름향기'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때 드라마 팬들이 많이 찾았다고도 해요.
명봉역앞 버스정류장... 정류장은 잘 만들어 놓았지만 버스는 하루에 단 세 번 온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사진을 몇 방 찍고 역 근처를 조금 돌아다녔는데도 시간은 이제 겨우 7시 15분 좀 넘게 지났더라고요. 이제 남은 40여분을 뭘 해야 하나 막막해졌습니다.ㅠ.ㅜ 그리고 일단 날씨가 너무너무 춥기도 했고요. 3월을 보통 겨울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3월까지는 겨울날씨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 이 날은 2월에서 벗어난지 겨우 이틀 째인 3월 2일이었던데다가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무지무지 추웠어요.(그런데 이날 낮에는 날이 좀 풀려서 겨울용 패딩을 입고 다니기에는 또 너무 더웠던 기억이...)
오? 그런데 무인역이라고 알고 온 명봉역에서 연기가 퐁퐁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아까 청소하고 계시던 분께서...?
명봉역 앞에는 역이름과 같은 '명봉역'이라는 제목의 시가 적힌 시비도 있었습니다.
아니 그나저나,
분명히 무인역으로 알고 왔고, 분명히 역 앞에도 이런 경고문이 세워져있는데, 아까 청소하시던 분은 누구며, 또 어째서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어쨌든 저는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 역 안으로 다시 들어왔는데요,
맞이방은 보시다시피 양쪽 문이 다 활짝 열린 데다가 난방도 안 되어 너무 춥더라고요.ㅠ.ㅜ
하지만 무인역답지 않게 역 안은 굉장히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어요. 특히 멋진 철도 사진들이 정말 많았는데, '나도 이렇게 찍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사진들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사진을 천천히 하나하나 감상하다 보니,
여름향기 촬영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액자도 붙어 있었습니다. 송승헌과 손예진이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이었나봐요. 저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사실 잘 몰라요.^^
역무원이 상주하고 있을 당시 매표 창구였을 위치에는 이렇게 방명록과 역방문기념스탬프가 놓여 있었습니다. 스탬프를 찍어갈 수는 없었고, 미리 찍힌 종이를 뜯어갈 수 있게 해 놓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철도 이용객 자체는 별로 없어도 들르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게 방명록에 꽤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사연들을 적어놓고 갔어요.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와봤다, 여행 중에 들렀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다 등등... 그리고 중간중간에 명봉역 앞이나 근처 마을이 고향이신 분들이 쓰신 것으로 보이는 글들이 있었는데, 아까 보여드렸던 시비에 적힌 '명봉역'이라는 시와 비슷한 애틋한 느낌이 나는 글들이더라고요. 역 앞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글을 남기신 분도 계셨고요... 다른 분들의 사연을 함부로 찍어 올리면 안될 것 같아서 사진은 빈 종이만 올립니다. 저도 간단하게 방문기념 인사말(?)을 쓰고 왔어요^^
어두운 실내에서 찍어서 그런지 사진들이 다 뭔가 선명하지 못하게 이상하게 나왔네요.
어쨌든 이렇게 역 안도 한 바퀴 돌고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대합실 한 켠의 의자에서 오들오들 떨며 앉아 있다 서 있다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 한분이 등장하셔서 "여행 오셨어요?? 추운데 역장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안에 따뜻해요!"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잉?? 직원분이신가 싶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역장실 안에 들어가서 앉았습니다.
말씀대로 역장실 안은 정말 따뜻하더라고요. 석유난로 한 대뿐이었는데도 정말 포근한 느낌이 좋았어요. 난로 냄새도 오랜만에 맡아봐서 괜히 들떴었고요. 그나저나 명봉역은 무인역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분은 누구시지? 하는 의문이 생김과 거의 동시에 그분께서 '나는 여기 명예역장이에요.'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아! 명예역장이시구나! 몇 년 전에 코레일에서는 명봉역같은 무배치간이역들마다 명예역장을 뽑아 코레일 정식 직원은 아니지만 역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었는데요, 이분이 바로 명봉역의 명예역장님이시더라고요.^^ 사실 명예역장 제도는 실효성이 없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다 폐지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명봉역 명예역장님인 김동민 명예역장님께서 역을 아끼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잘 관리하셔서인지 코레일 전남본부에는 명예역장 제도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하더라고요. 김동민 명예역장님의 모습은 http://blog.naver.com/byunyo/220344365209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떤분이 블로그에 직접 찍어 올리신 사진이에요.^^
제가 역장실 난로 앞에 앉아서 쉬는 동안에도 역장님께서는 계속 고구마를 난로 속에 넣어서 구우시고, 난로 위에 빵도 올려서 데우시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데운 빵을 주시더라고요.^^ 마침 배가 엄청 고팠던 관계로 정말 감사하게 잘 먹었습니다. 아 맞다! 그리고 차도 한 잔 주셨어요. 날씨가 추워서 손도 시렵고 몸이 차가워져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주신 따뜻한 차 한 잔덕분에 온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어요. 물론 그 뒤에 먹은 부드러운 빵도 한 몫 했고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역장님도 저랑 같은 기차를 타고 오셨다가 같은 기차를 타고 돌아가시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까 기차에서 저 말고 내리신 아저씨 한 분이 바로 김동민 명예역장님이셨나봐요.ㅎㅎㅎ 원래는 순천에 사시는데 순천에서 새벽에 저랑 같은 기차를 타고 아침 7시에 명봉역에 내리셨던 거죠. 그리고 순천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차가 54분 뒤에 올 때까지 역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고 7시 54분에 다시 순천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시는데, 마침 제가 그 시간에 맞춰서 왔던 거예요(물론 저는 순천까지는 안 가고 보성역에서 내리지만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만약 그 54분 사이가 아닌 다른 때에 왔다면 그냥 아무도 없는 예쁜 무인 간이역으로만 기억했을텐데,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았답니다. 또 추위에 떨지도 않았고요.
역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말 명봉역에 대한 역장님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역장님은 프로사진작가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명봉역 대합실에 있던 수많은 사진작품들도 모두 김동민 명예역장님이 찍으셨던 것이었어요. 역장실 안에도 진열장에 여러 카메라들이 있더라고요. 철도 사진을 주로 많이 찍으신다고 해요. 그래서 순천에 사시지만 전국의 많은 철도 노선과 역들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한편, 일본에서 드라마 여름향기가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는 일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역 앞에 여러대 정차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고등학교 때 겨울연가 촬영지였던 저희 고등학교 담장에 일본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던 게 떠올라 그 이야기를 했고요.ㅋㅋ
어쨌든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순천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어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역장님도 54분 동안 열심히 난로에서 구우신 군고구마를 봉투에 담아가시더라고요. 그리고 하나는 저에게 주셨어요. 또 생수도 한 병 주셨답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마실 수 있는 물인데, 제가 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ㅋㅋ 정말 고맙습니다!
그 54분 사이에 아침해가 밝게 빛나는 상쾌한 아침 느낌으로 바뀌었네요^^ 포스팅 시작 부분에 있는 같은 방향 사진이랑 비교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드디어 7시 54분에 순천역으로 가는 무궁화호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 손에 군고구마를 들고 급하게 걸어가다가 찍은 사진이라 사진이 좀 기우뚱.
김동민 명예역장님이랑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며 가다가 저는 보성역에서 역장님과 작별을 하고 미리 내렸습니다. 역장님께서 다음에 또 오게 되면 미리 연락하고 오라고 명함도 주셨어요. 다음에 가족들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아니면 저 혼자라도 꼭 다시 들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한편 기차 안에서 껍질을 까서 먹기가 좀 그래서 보성역가지 오는 내내 한 손에 들고 있던 군고구마...
보성역에 도착해서 대합실 한쪽에서 껍질을 열심히 까면서 먹었답니다.ㅋㅋㅋ 군고구마는 꽤 오랜만에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어요^0^
한편, 같은 날 낮에 보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쪽으로 가는 길에 다시 명봉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경전선은 단선 철도이기 떄문에 옛 경춘선처럼 중간에 맞은편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교행'을 해요. 옛 경춘선 타고 다니던 21살때까지만 해도 교행은 일상과 같은 일이었는데(?ㅋㅋ) 오랜만에 교행을 하니 새롭더라고요. 느리고 불편하기는 해도 마주오는 열차를 이렇게 기다렸다가 맞은편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랑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나저나 이 분들은 여행하는 길에 명봉역에 들르신 것 같은데, 이 분들은 아무도 없는 무인역으로 명봉역을 기억하시겠네요...
그럼 명봉역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명봉역 관할 +
- 코레일 광주전남본부
+ 명봉역 주소 +
-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예재로 384
+ 명봉역 연혁 +
1930.12.25.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58.12.31. 역사 신축 준공
1977.05.16. 수소화물취급중지
1985.11.01. 화물 취급 중지
1991.01.01. 소화물 취급 중지
1991.04.20. 화물 취급 개시(규석 한정)
2006.11.15. 화물 취급 중지
2008.06.16.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
2014.11.12. 전남본부장명 명예역장배치 및 맞이방에 철도사진 갤러리 개장+ 명봉역과 같은 노선의 근처 역 +
- 경전선 : 삼랑진 방면 ←[보성]---[광곡]---[[명봉]]---[이양]---[능주]→ 광주송정 방면
* 경전선 보성역, 이양역, 능주역은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여 가실 수 있고, 광곡역은 철도를 이용해 가실 수 없습니다.
2016. 3. 15. 경춘선통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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