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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내일로] (23) 병천순대&독립기념관(1)동부역사(한국여행)/10년 1월 내일로 2016. 4. 14. 00:30
이번엔 방향이 달랐기 때문에 길 건너에 있는 동부천안역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지하상가로 들어왔는데, 여전히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고요.
동부천안역 버스 정류장에서 저희가 시내버스를 타고 갈 곳은 바로 순대로 유명한 천안 병천면! 또 병천의 아우내 장터는 유관순 열사께서 만세운동을 하셨던 곳으로도 유명하죠. 저희는 점심으로 그 유명한 병천순대를 먹기로 했습니다! 그나저나 같은 천안이기는 해도 천안시내에서 병천까지는 정말 오래걸리더라고요. 거의 4~50분 가량 걸렸던 것 같아요. 거기다가 버스에 사람은 얼마나 많든지 오랫동안 이리저리 쏠리는 버스 안에서 서 있느라 정말 지쳤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병천면!
면 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시가지가 꽤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역시 순대가 유명한 곳 답게 순대를 파는 식당이 여기저기 보였답니다.
그 중 저희가 선택한 집은 '청화집'이라는 식당이었어요. 왜 이 집을 선택했었는지는 벌써 6년 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괜찮았던 것 같아요!
일단 그냥 순대를 시켰고,
또 순대국밥도 한그릇씩 먹었답니다! 분식집에서 파는 인스턴트 순대와는 정말 다른 깊은 맛이 나더라고요! 특히 병천순대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돼지 소창이라는 것을 사용해서 누린내가 적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그냥 맛있었어요.ㅋㅋㅋ 병천에서 순대가 유명해진 것은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50~60년쯤 전에 이 지역에 돼지가공공장이 들어섰는데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요. 어쨌든 순대가 정말 입에서 살살 녹더라고요. 아주아주 맛있었어요! 천안에 가시면 꼭 병천 순대를 드셔보세요! 조금 이따가 저희도 가겠지만 독립기념관과도 그리 멀지 않거든요.
유관순 열사께서 3.1 독립만세운동을 하셨던 아우내 장터가 있는 지역답게 '아우내'라는 지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우내 약국도 있네요.
'아우내장터'라는 이름을 가진 길들도 있습니다. 이 근처에 유관순 열사의 생가도 있다고 해요. 저희는 시간상 들르지는 못하고 바로 다음 목적지인 독립기념관으로 갑니다.
뿅! 시내버스를 타고 금방 독립기념관으로 왔습니다.
독립기념관은 정말 오랜만에 왔어요. 초등학교 때 엄마와 사촌동생들과 함께 왔던 적이 있는데, 사실 그때 좀 무서웠던 기억이 있었어요. 고문 장면 같은 것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아서요. 분명 우리의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이기는 하지만, 어린 마음에 너무 우울하고 무서운 분위기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느껴질까요? 그나저나 저 멀리 보이는 겨레의 탑은 저희 집에 모형으로도 있답니다. 제가 기억도 잘 못하는 아주 어릴 때도 여기에 가족들끼리 왔던 적이 있었다고 해요. 아주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저 멀리 보이는 겨레의 집 계단을 오르던 기억이 살짝 나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 외에는 전혀...
언제 봐도 웅장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80년대에 공사 과정에서 공사비를 착복해 싸구려 전기부품과 자재를 사용하는 바람에 개관하기 전에 지붕이 홀랑 타버리는 일이 있기도 했죠. 지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참 여러모로....ㅠ.ㅜ 어쨌든 지금은 천안시의 랜드마크처럼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겨레의 집 앞 광장 양쪽으로는 이렇게 엄청난 수의 태극기들이 펄럭이고 있더라고요.
겨레의 집 앞 야외 공간에도 전시물들이 있었는데요, 위의 작은 박스 같은 곳들은 독립투사분들이 일제에 의해 고문당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랍니다. 고문 도구들도 전시되고 있고요.
주의! 이 아래에는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진(고문 장면)들이 있습니다.
실제는 아니고 마네킹으로 재현한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 보기 힘들 수 있으므로 주의하세요!
실제로 고문시 사용되었던 도구들이라고 합니다.
일제가 독립투사들에게 행했던 잔인한 고문 장면이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조금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분들이 이렇게 희생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존경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 체...체험?? 인두지짐 고문과 주리틀기 고문을 체험해 보라니... 일제가 독립투사분들을 대상으로 이런 끔찍한 만행들을 저질렀다는 것, 그리고 이런 분들의 독립을 위한 의지와 희생정신을 기려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굳이 다칠 우려가 있으니 조심할 정도가 있는 고문 체험을 직접 해보아야 하는 건지...
각 방마다 옆에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그 옆에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를 재현한 미니어처가 있었습니다.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에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연합하여 일본군에 대항하여 만주 지역에서 벌인 10여 차례의 전투를 말합니다.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어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중요하게 배우는 전투이죠. 하지만 청산리 전투 후 독립군에 대한 일본군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왔고, 소련과 연계되어 자유시 참변에 휘말리기도 하는 등 그 이후에는 청산리 전투 때처럼 일본과 큰 전투를 벌일 수 있는 힘을 사실상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번엔 조선인들을 총살하는 일본군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얼마 전 KBS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서도 찾아갔던 중국 하얼빈역을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하얼빈역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장소이죠. 저 안쪽에 마네킹으로 재현한 장면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뒤에서 지켜 본 총 맞은 직후의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는 한일병합 바로 전 해인 1909년에 있었던 일인데요, 비록 하얼빈 의거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일본에 저항할 의지를 심어주는 사건이기도 했고, 또 당시 중국인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1박 2일을 보니 현 중국 정부에서도 하얼빈 시내 이곳저곳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장소에 기념물과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더라고요. 의거 바로 다음 해인 1910년에 한일병합이 되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안중근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이처럼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 켠에는 독립문 모형도 있었습니다. 독립문의 '독립'은 사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독립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의지를 표방하기 위해 세워진 문이라고 생각하시지만, 독립문은 '청나라'의 간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상징하는 문입니다. 심지어 독립문 현판은 우리가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이완용'에 의해 쓰여졌고요. 독립문은 독립협회의 주도로 조선 정부에 의해 원래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문인 영은문이 있던 자리에 영은문을 헐고 세워졌습니다. 사실, 나중에는 이러한 의미가 너무 강조되어, 마침 조선을 삼키기 위해 조선을 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이 급선무였던 일본에 의해 상징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이후에도 독립문을 총독부 차원에서 열심히 관리했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립문이 '친일파에 의해 세워진 친일파의 상징'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에요. 청일전쟁 직후 독립문 건립 배경에 일본의 간섭이 있었던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본래 의도는 청나라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일본의 발전을 참고해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혁을 이룩하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마침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완전히 떼어놓을 필요가 있었던 일본에 의해 '청나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과도하게 부각된 것일 뿐입니다.
이제 겨레의 집을 지나 전시실로 들어갑니다.
겨레의 집은 입구 같은 역할이고요, 사실 전시실들은 그 뒤 공간에 쭉 흩어져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은
- 제1관 : 겨레의 뿌리관
- 제2관 : 겨레의 시련관
- 제3관 : 나라 지키기관
- 제4관 : 겨레의 함성관
- 제5관 : 나라 되찾기관
- 제6관 : 새나라 세우기관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시간 상 모든 관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고요, 제1관~제3관만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너무 아쉬워서 꼭 다시 오자고 태영이와 이야기했는데, 그 이후로 천안 자체에 한 번도 가지를 않았네요...ㅠ.ㅜ
제 어릴 때 기억으로는 마냥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근대화 시절에 신문물이 도입되면서 있었던 상황들에 대해서도 전시 및 설명이 재미있게 잘 되어 있떠라고요. 위의 사진은 사람들이 전차를 타는 모습입니다.
사진관 간판도 있네요.^^
사진관 건물 옆 가로등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이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후 서구식 옷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른 고종황제의 모습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아직 식민지가 아니기도 하고 근대화 과정에서의 재미있으면서도 황당한 에피소드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조금은 밝은 분위기가 있지만, 이 다음부터는 정말 아프고 슬픈 역사에 대한 전시물들이 이어지더라고요. 다음 편에 독립기념관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To Be Continued...
2016. 4. 14. 경춘선통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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