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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내일로] (24 - 마지막편) 독립기념관(2), 그리고 여행의 끝동부역사(한국여행)/10년 1월 내일로 2016. 4. 26. 00:30
안녕하세요! 경춘선통일호입니다. 드디어 2010년 1월 내일로 여행기 마지막 편까지 왔네요!
지난번에 독립기념관을 둘러보다가 끝났죠? 계속 이어서 관람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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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ㅜ 사진에 또 글자를 잘못 넣었네요.ㅠ.ㅜ 바로 전 포스팅이었던 다마스쿠스 게이트 역을...)
지난번에 보여드린 전시물들의 시대까지만 해도 (이미 암울한 모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주권도 빼앗기지 않았고, 일본도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상황을 조명과 그림자를 이용해 재현해 놓은 전시물입니다. 타국에 의해 한 나라의 황후가, 그것도 궁궐 안에서 살해되다니... 명성황후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평가가 어떤가를 떠나 일단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곳의 전시물도 그렇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에서는 명성황후가 그 나름대로의 품위를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훨씬 더 잔혹하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물입니다. 을사늑약으로 인해 사실상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죠. 그 후 1910년에 공식적으로 일본에 병합되었고요. 을사늑약은 고종의 동의 없이 일본의 강요에 의해 체결된 조약으로 고종은 을사늑약 체결 직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친서를 보내기도 하고, 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보내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알리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인해 이와 같은 노력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당시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했던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을 을사5적이라고 부릅니다.
무단통치시대는 일제강점기 중 가장 처음의 10년 정도를 이야기하는데요, 매우 강압적인 통치방식이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큰 반감을 샀고,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통치방식을 바꾸어 표면적으로는 조금 더 유화적으로 보이는 이른바 '문화통치' 시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문화통치는 겉으로는 조선인에 대해 유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조선 민족 내부를 분열시키는 더욱 교묘한 식민지 지배 방식이었습니다.
한동안 이른바 '문화통치' 기조를 유지해 나가던 일제는 중국 등 대륙 진출을 본격화하며 전시 체제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른바 '문화통치' 기조는 '민족 말살 통치'로 바뀌게 됩니다. 창씨 개명과 신사 참배 강요, 그리고 무차별적인 징용과 징병, 정신대와 위안부 동원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졌죠. 그렇게 점점 극단으로 치닫던 일제는 결국 패망하게 되었지만요.
징병당한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나타낸 모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엔 1987년까지 교도소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 강점기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보겠습니다.
주의! 이 아래에는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진(고문 장면)들이 있습니다.
실제는 아니고 마네킹으로 재현한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 보기 힘들 수 있으므로 주의하세요!
이곳은 1인실 독방이라고 해요. 독방이라기보다는 거의 서 있는 관 정도의 크기이네요... 이곳에 계속 같여 있으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정말 끔찍한 고통일 것 같아요. 5분만 있어도 힘들 것 같은데...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만으로 이렇게 모진 고문을 겪고, 심지어 목숨을 잃으시면서 희생하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린이들도 관람을 왔네요! 그나저나 어린이들은 이 부분에서 조금 무섭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지....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 왔을 때 비슷한 전시물들을 보면서 정말 무서웠었거든요.... 그때도 전시물의 의미는 파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눈에 보이는 모습들이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나요.
이번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연행하는 모습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이렇게 강제로 연행되거나, 혹은 공장에서 일을 시켜준다고 속여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위안부 할머니의 기억을 되살려 영화화한 '귀향'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죠. 처음에는 대기업 영화관 체인들이 개봉을 꺼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요(도대체 왜??), 국민들의 성원에 따라 상영관이 많이 늘어났었어요. 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안타깝게도 상영기간을 놓쳐 영화관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꼭 인터넷으로 구입해서 보려고요. 사실 영화 <귀향>은 정말 제작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해요. 심지어 정치권에서 영화 제작을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여기 다 쓰기는 힘들고 궁금하시면 https://namu.wiki/w/귀향(영화) 이 링크를 참고하세요.
작년 말에 타결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은 정말 보면 볼수록 화가 나요. 어떻게 당사자들한테는 말도 안하고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그렇게 말도 안 돼는 결과를 낼 수가 있는지... 심지어 UN에서도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한 부적절한 합의'라고 이야기 할 정도이니까요.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에요! 대한민국 정부에요 일본 정부에요!'라고 항의를 하니 갑자기 이른바 보수 단체인 '어버이연합'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을 보니 종북세력'이라고 주장하며 합의 지지 시위를 벌이기도 했죠. 며칠 전에 JTBC 뉴스에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을 듣다보니 '정대협은 종북 성향을 띠는 단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게 말이야 방귀야. 그러면서 계속 '우리는 박정희, 박근혜,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단체입니다.' 이 소리는 몇 번을 하는지... 그러면서 최근 여러 언론에 의해 제기된, 청와대에 지시에 따라 시위를 했다는 의혹이라든가 전경련과 관계된 의혹 이런 것에 대해서는 계속 빙빙 돌려서 말만 바꾸고...
정부에서는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협상 타결 직후 일본 정부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잘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어요. 일단 합의문에서 가해국인 일본 정부가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자체가 정말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이건 거의 협박 수준의 발언이잖아요.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이번에 일단 합의하면 이 합의에 어떤 문제가 있든 간에 넌 앞으로 니가 당한 것에 대해 절대로 말 안하기로 하는 거다. 알았냐?? 말 하면 합의 어기는 거다!' 거의 이러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걸 그냥 받아들이다니... 정말 그냥 합의 자체에 급급한 나머지 아예 읽어보지도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읽어봤다면 이건 더 생각이 없는 거고요.
이번 합의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으면 중국, 대만 등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을 지켜본 사람들이 자국에 위안부 협상을 촉구하면서도 '하지만 한국처럼은 안된다'라는 조건을 달았을까요. 그냥 이번 합의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권의 정치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생가해요. 근데 그냥 쇼 치고는 대가가 너무 큰 쇼였죠.
독도에 대한 내용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제 다음 전시관으로 가야 하는데... 시간을 보니 벌써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ㅠ.ㅜ 아쉽지만 나머지 전시관들에 대해서는 다음을 기약하며 서둘러 버스를 타러 갑니다.
뒷편에서 본 겨레의 집
정말 웅장하네요!
비록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픈 근대사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 되었고, 광복 후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 시기와 관련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여전히 일제강점기 반민족 행위자들의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만 봐도 당장...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일제 강점기에 고위직에 있었던 반민족 행위자들을 그대로 새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고위직으로 유지시켜주는 등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 같은 것을 한번 편찬하려고 해도 어버이연합 등 보수(?) 단체들 및 일부 정치인들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는 거고요. 언제쯤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저희는 이제 천안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시내버스를 탑니다.
뿅! 천안역 도착! 저와 태영이는 기차를 타기 전에 천안역 앞의 호두과자집에서 선물용 호두과자를 샀습니다. 저희 엄마께서 호두과자를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집에 가져다드리니 정말 기뻐하시더라고요^0^
저희가 탈 열차는 17:16분에 천안역을 떠나 용산으로 가는 새마을호!
저희가 탈 열차가 들어고고 있습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네요.
저녁 6시 20분이 좀 넘은 시간에 용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태영이는 용산역 안의 롯데리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뒤 중앙선 전철을 타고 청량리역으로 갔습니다. 춘천행 기차를 타려면 청량리역으로 가야 했거든요.
그리운 옛 청량리역 임시역사.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정말 많이 이용했었는데...
저와 태영이가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탈 열차는 저녁 7시 30분에 청량리역을 출발해 남춘천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청량리발 남춘천행 무궁화호 열차.
그리고 역시 지금은 사라진 '성북'이라는 역명.
그렇게 열차에 타서 한참 자다 보니...
2010년의 남춘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역 대신 운동 시설과 공원이 들어와 있답니다.^^ 새로 생긴 남춘천역은 춘천역 방면으로 600m 옮겨졌고요.
이 건물 역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 이 자리에는 도로가 뻥 뚫렸답니다.
어쨌든 이틀(2010.1.31.~2010.2.1.), 또 이틀(2010.2.4.~2010.2.5.) 이렇게 나누어 다녀온 2010년 1월 내일로 여행기를 드디어 마치게 되었네요!
5년도 더 전인 2010년 11월 4일에 연재를 시작해 이제야 끝내게 되다니... 정말 오래 걸렸네요.ㅋㅋㅋ 그래도 이렇게 끝내고 나니 후련하네요^^ 예전부터 항상 애매한 상태로 남겨두었던 여행기라 블로그 들어올 때마다 혼자 마음에 걸렸었거든요.
그럼 지금까지 여행기 읽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To Be Continued...
2016. 4. 26. 경춘선통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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